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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망가진 궤도 위의 기록: 케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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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시라는 이름의 중독

나, 케이는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 전교 회장을 도맡았고, 명문대에 진학해서도 과 대표를 맡으며 항상 무리의 중심에 서야 직성이 풀렸다. 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친구들 술값은 내가 내야 했고, 비싼 외제차를 타며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것이 내 자존감의 근원이었다. 하지만 그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더 큰 부'에 대한 갈증이 괴물처럼 자라고 있었다.


2. 늪으로의 초대

모든 시작은 2021년 봄이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나는 주변에서 코인으로 벼락부자가 됐다는 소식에 초조함을 느꼈다. 처음엔 소액 단타로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사설 시그널 방'과 '100배 고배율 선물 거래'는 나를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인도했다.

내 월급은 세후 350만 원. 하지만 어느 날, 단 5시간 만에 한 달치 월급이 화면 속에서 증발했다. 공포보다 앞선 건 '복구해야 한다'는 광기였다. 나는 평생 손대지 않았던 대출에 손을 댔다. 2금융권에서 4천만 원을 빌렸지만, 그것 역시 선물 거래의 제물이 되어 사라지는 데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3. 바닥 밑의 지옥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빚이 2억을 넘겨 있었다. 부모님의 식당 운영 자금에 손을 대고, 8년 넘게 다닌 직장의 퇴직금까지 중도 인출해 쏟아부었다. 심지어 지인 20명에게 "부모님이 편찮으시다"는 거짓말로 돈을 빌렸다. 내 이름 앞에는 '코인 중독자'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고, 일주일 단위로 이자가 불어나는 사채의 늪에 빠져 사채로 사채를 막는 지옥 같은 일상이 반복됐다.

절망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인해 뇌 손상을 입어 말은 어눌해졌고, 글씨를 읽는 것조차 힘겨워졌다. 하지만 그 몸을 이끌고도 나는 또다시 코인 방송 BJ의 수익 인증에 홀려 마지막 남은 원금까지 탕진했다. "원금이 사라져야만 멈출 수 있다"는 저주 같은 말은 결국 나의 현실이 되었다.


4. 망치로 맞은 듯한 깨달음

모든 사실을 다시 부모님께 털어놓으며 유서를 썼던 날,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이모부였다. 그는 과거 노름에 빠졌던 자신을 아버지가 구해주었던 옛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번엔 본인이 그 은혜를 갚겠다고 하셨다. 부모님과 이모부의 도움으로 지인들의 빚과 사채를 정리하던 날, 나는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죽이려 했던 내 삶이 사실은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사랑으로 지탱되고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5. 100원의 평화

현재 나, 케이는 매달 150만 원씩 8년간 빚을 갚아야 하는 워크아웃 상태다. 부모님께 빌린 돈까지 갚고 나면 한 달에 남는 돈은 고작 10만 원 남짓이다.

예전의 나라면 이 10만 원을 보고 다시 선물 거래 창을 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퇴근 후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는 것, 편의점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 아침 알람 소리에 눈을 뜨며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이 평범한 일상이 눈물겹게 감사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은 절대 안 변한다"고. 하지만 나는 내 남은 인생 10년, 20년을 바쳐 그 말이 틀렸음을 증명하고 싶다. 1,000원을 벌기 위해 남을 속이고 내 마음을 피폐하게 만드는 삶보다, 100원을 벌더라도 내 마음이 평화로운 삶이 훨씬 가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케이다. 수원에서 태어나 한때 길을 잃고 괴물이 되었으나, 이제는 평범한 인간으로 다시 살아가기 위해 매일 한 걸음씩 내딛고 있는 중이다.

댓글목록1

마닐라서부장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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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일들이 생각나게 만드는 글이네요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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