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소설 - 카지노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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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의 늪
제1장: 첫 유혹
1982년 늦가을, 추수감사절의 쌀쌀한 바람이 라스베이거스의 네온사인을 흔들던 날이었다. 나는 친구의 뜻밖의 제안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우리 라스베이거스 갈까?"
그때까지 나는 보수적인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난 평범한 유학생이었다. 도박이나 유흥은 죄악이라 배우며 자랐고, 그런 세속적인 즐거움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하지만 그날 밤, 네 명의 친구와 함께 시작된 다섯 시간의 자동차 여행은 내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놓을 운명의 시작이었다.
밤하늘을 수놓은 네온사인들이 반짝이는 라스베이거스의 밤거리는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카지노의 화려한 실내장식, 슬롯머신의 경쾌한 소리, 바카라 테이블 위를 날아다니는 카드들... 모든 것이 신비롭고 매혹적이었다. 그날 밤의 흥분과 설렘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시작된 카지노와의 인연은 10년이 넘게 이어졌다. 처음에는 연간 10회 미만의 절제된 여가생활이었다. 휴가 때마다 카지노를 찾아 게임을 즐기고, 때로는 적당한 수입도 올렸다. 하지만 그것은 폭탄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것과 같았다. 나는 그저 즐거운 춤을 추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내 품에는 이미 폭탄이 안겨있었다.
제2장: 강원랜드의 유혹
1995년, 나는 결혼과 함께 한국으로 귀국했다. 아내와 함께 시작한 사업은 순조롭게 성장했고, 우리는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여유로운 삶 속에서 우리 부부는 일 년에 한 번씩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로 여행을 다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은 단순한 여행이었고,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협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 강원랜드가 문을 연다는 소식은 우리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그해 12월 크리스마스, 우리 부부는 처음으로 강원랜드를 찾았다. 흰 눈이 내리는 정선의 산자락에 자리 잡은 카지노는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날도 우리는 적당한 수익을 올렸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것은 비극의 서막에 불과했다. 아내도 처음으로 카지노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때는 몰랐다. 우리가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제3장: 나락으로의 추락
2001년 3월,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은퇴를 선언했다. "주식투자하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해요."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전문 도박사가 되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고 있었다. 20년간의 카지노 경험이 나를 과신하게 만들었고, 아내 역시 내 판단을 전적으로 믿었다.
강원랜드에서의 첫 달,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게임에 빠져들었다. 처음 5일 만에 500만원을 잃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하루에 수백만 원씩 잃다 보니 보름 만에 1억 원 이상이 사라졌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지만, 이미 우리는 본전 찾기라는 더 위험한 도박의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호텔비를 아끼기 위해 민박집으로 옮기고, 결국에는 땅을 팔았다. 정성스레 가꾸던 집도 처분했다. 건물도 팔았고, 자동차도 팔았다. 마지막에는 시계와 반지까지 전당포에 맡겼다. 20억이 넘는 재산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밤낮으로 뱅커와 플레이어 사이의 승률을 계산하며, 나는 점점 더 깊은 도박의 늪에 빠져들었다. 돈이 없어 카지노에 가지 못하는 날이면 체크리스트를 보며 바카라를 연구했다. 그렇게 2010년, 우리는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제4장: 죽음의 문턱
당뇨와 스트레스는 내 건강을 서서히 갉아먹었다. 한때는 미국에도 집이 있고, 서울에도 건물이 있던 우리 부부였지만, 이제는 알코올 중독자처럼 피폐해져 갔다.
2010년 5월 2일 아침, 카지노 입구에서 나는 쓰러졌다. 심장마비였다. "이렇게 죽는구나..." 그런 생각이 스치는 순간, 보안요원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마지막으로 보였다.
원주기독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아내의 눈물 젖은 얼굴이 보였다. 어머니와 동생들도 찾아와 눈물로 기도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도박 중독이라는 사실을 숨겼다. 가족들의 신뢰를 또다시 배신한 것이다.
제5장: 강요된 구원
2011년, 운명은 아이러니한 선물을 주었다. 좌석을 매매했다는 이유로 강원랜드 출입정지 3년이라는 징계를 받은 것이다. 카지노 중독자에게 3년의 출입정지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절망 속에서 나는 아내에게 제안했다. "당신은 여기 남고, 난 마카오에 가서 살겠소." 하지만 아내는 끝없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나를 여기 버리고 혼자 가겠다는 거예요?"
그날 밤, 우리는 함께 통곡했다. 강요된 단도박이었지만,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었고, 아내는 식당일을 시작했다.
온몸이 부서지고 이가 시릴 정도로 고된 날들이었지만, 3년간의 노력으로 우리는 신용을 회복했다. 작은 아파트도 마련하고, 자동차도 새로 장만했다. 하지만 그때도 우리는 카지노 영구 출입정지는 신청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돌아가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마지막 장: 끝나지 않은 유혹
지금도 우리는 일과 도박을 병행하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완전한 단절은 아직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서로를 붙잡고 있다. 때로는 도박의 유혹이 밀려오지만, 그날 밤 아내의 눈물을 기억하며 버텨낸다.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진정한 행복은 화려한 카지노의 불빛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듬어주는 작은 손길 속에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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