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갬블러가 아니다 > 썰&사연 제보

본문 바로가기

썰&사연 제보

나는 이제 갬블러가 아니다

본문

나는 이제 갬블러가 아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사십대중반의 평범한 카페사장입니다.


원래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나,  지금은 강원도 속초의 작은 해변앞에 있는 카페를 운영중입니다.


저의 도박썰을 이야기 하자면 우선 저의 어린시절부터 이야기를 해야할듯 합니다.


아버지는 동네의 작은 병원을 운영하시는 의사셨습니다. 소아과였는데, 어린 기억에도 환자가 꽤 많았던것 같습니다.


저희 집은 의사인 아버지 덕분에 꽤나 유복했습니다. 여름휴가때면 외국으로 여행을 다녔고, 겨울엔 용평스키장에서 레슨을 받으며 스키를 탔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는 한달에 한번정도 친구분들을 집으로 초대해 저녁을 먹고 거실에서 포커를 치셨습니다. 지금의 홀덤같은건 당연히 아니고 세븐오디 아니면 하이앤로우 같은 게임이었습니다.


뭐 큰돈이 걸린것도 아니었고 그냥 아버지와 친구분들이 재미로 하는 정도였습니다. 저는 포커를 치는 아버지를 구경하며 포커의 룰을 어느정도 알게되었습니다.


아버지 친구분들이 가신 후 아버지에게 포커를 치는법을 배웠고, 혼자서 많이 공부했던거 같습니다. 이게 초등학교 5학년 무렵입니다.


이게 제 자랑같지만 제가 머리가 참 좋았습니다. 초등학교때 했던 아이큐 검사에서 143이 나왔으니 꽤나 좋은건 맞는것 같습니다.


머리도 좋았고 호기심도 많은 시절이라 포커의 룰과 배팅방법을 금방 익혔던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친구분들과 포커를 치고 계셨는데, 급한 전화를 받고 30분정도 자리를 비우실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아버지깨서 저에게 니가 좀 하고 있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제 인생의 첫 실전게임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실때까지 꽤나 괜찮은 승리를 거뒀던 기억이 납니다. 나와있는 카드들을 보면서 어느정도의 확율을 계산했던 기억이 나는데 참 쉽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라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를 가서 애들끼리 하는 포커에서 친구들 돈을 따는건 저에겐 참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조금씩 도박을 시작하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전 대학입시에 성공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과외로 직장인 만큼 수입을 올릴수 있었던 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인생은 순탄한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집안이 어려워졌습니다. 동네에서 작은 병원을 하던 아버지는 IMF직전 무리해서 병원을 강남으로 확장 이전을 하셨고, 여러 집안의 악재들이 겹치고 겹치면서 집안사정은 굉장히 어려워졌습니다.


그래도 제 등록금과 용돈은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풍족한편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무리하셔서라도 저에게는 행복한 삶을 주시고 싶은 마음이셨을 겁니다. 다른 아이들이었다면 철이 들었을텐데 .저는 전혀 철이 들지 않았습니다. 예전만큼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삶을 원망하기도 했고, 빨리 큰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것 같습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나름 괜찮은 직장에 취업을 했지만, 저의 마음 한켠에는 일확천금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날 저녁도 평소와 같은 금요일이었습니다.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길, 저는 문득 스키장을 통해 존재를 알고 있었던 강원랜드 생각이 났습니다. 정말 그 순간 왜 그 생각이 났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컴퓨터로 강원랜드를 검색해보니,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사북고한으로 가야되는걸 알게되었고, 정말로 무엇에 홀린듯 홀로 강원랜드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2007년말의 일입니다.


강원랜드에 도착해서 입장권을 끊고 입장하니 정말 뭐가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티비에서나 보던 슬롯머신들과 테이블게임들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제가 룰을 아는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져온 100만원정도의 돈을 칩으로 어떻게 바꾸는지도 몰라서 두리번두리번 거리고 있었는데,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돈을 칩으로 바꾸는걸 보고 저도 따라서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 테이블은 블랙잭 테이블이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저는 남들보다 머리가 훨씬 좋았습니다. 블랙잭룰을 알게되는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뒷전에서 게임을 했는데 가져온 100만원을 2시간정도만에 다 잃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든 생각은 내가 앉아서 직접 했으면 이길수 있었을텐데 였습니다. 뒷전에서 아무 권한도 없이 앞전 플레이어에게 제 운명을 맞기는게 너무 싫었기에 그 길로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온 저는 컴퓨터로 블랙잭에 대한 모든것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에는 번역된 블랙잭 관련 서적도 없었고, 정보를 얻을수 있는 루트가 한정적이었는데,


그때 저에게 한줄기 빛처럼 다가온게 바로 다음카페 '강원랜드 이기는 방법' 우리가 알고있는 BK카페 입니다. 이 곳에는 블랙잭에 대한 수많은 노하우와 연구들이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 있었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베이직부터 시작해서 카운팅, 변형베이직, 변형인덱스등 우리가 카지노를 이길 수 있는 그 작은 엣지를 찾으려는 노력이 펼쳐지고 있던 그곳은 저에게 너무나 황홀한 공간이었습니다.


카페에 가입을 하고 카페에 올라온 글과 후기들을 읽던 저는 어느날 다시한번 강원랜드로 향합니다.


카페회원분들이 모여서 게임을 하던 7피트 10번테이블로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뒤에서 한슈정도 그냥 지켜봤습니다. 한슈정도 지켜보니 테이블의 모든 사람들이 카운터구나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슈가 끝나고 모두가 흡연실로 향하려 할때 용기내어 저도 회원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다들 제가 너무 어려보였는지(서른 무렵입니다), 학생아니냐고 물어보시며, 어쩄든 환영한다고 같이 게임 해보자고 말씀해주셔서 외로운 카지노안에서 생긴 소속감에 행복했던 기억이납니다.


집에서 시뮬레이션으로 연습했던 카드카운팅과 베이직은 실전에서도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옆에 계신 회원분과 수시로 확인해봐도 정확했고, 돈을 따고 잃는거 자체보다 내가 정확히 카운팅 하고 있고 정확히 베이직으로 플레이하고 있으며, 상황에 맞는 정확한 금액을 베팅하고 있다는 사실 자채가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매주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강원랜드로 출발해 월요일 첫차로 강원랜드에서 회사로 출근하는 일상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1년 6개월정도 게임에서 크게 이기지도 크게 지지도 않는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제 출정 시드는 200만원 이었는데, 정석대로 플레이를 한다는 가정으로 당시의 1000-100000원 블랙잭 테이블에서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이 나오지 않는한 그 돈 모두가 오링나는 상황은 나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정해놓은 윈컷, 로스컷을 모두 칼같이 지키며 1년6개월을 게임하다보니, 카페 내에서도 저에대한 어느정도의 신뢰 비슷한게 생겼습니다. 처음 플레이 하는 신규회원분이 어떻게 플레이 하는지를 물어보면, 7피트 테이블에서 같이 게임하던 카페 회원분깨서 저를 가리키며, 저 친구 하는대로 해보시라고 정말 칼같이 게임한다고. 그 말을 들었을때의 뿌듯한 마음이 지금도 생각입니다.


그러던중 우리 모두가 겪는 그날이 저에게도 왔습니다.


1년 6개월을 강원랜드를 다니면서 저는 단 한번도 블랙잭 이외의 게임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도박을 하는게 아니라, 카운팅하고 정해진대로 베팅하는 기계다. 기계는 운에 맞기는 바카라 같은 게임은 하지 않는다라는 철칙이 있었기에 바카라 테이블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그날의 블랙잭은 참 지루했던 기억이 납니다. 설 연휴라서 사람이 참 많았던 날이었는데 저녁 7시부터 새벽4시까지 엔티벳만 하는 그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날이었습니다.


1000원을 베팅해놓고 카드만 세는 그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자, 저의 인내심이 그 순간 끝났던것 같습니다. 처음 강원랜드에 간것처럼,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저는 블랙잭 셔플 시간에 바로 옆에 있는 바카라 테이블로 향했습니다.


바카라의 대강의 룰만 알고 있었는대, 그냥 아무 생각없이 플,뱅 중 하나에 10만원을 뒷전에서 베팅했습니다. 맞았습니다. 그리고 마법처럼 10개남짓의 줄이 계속 내려와 그 잠깐의 시간동안 100만원을 이기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끝나고 블랙잭 테이블로 돌아와서 다시 1000원을 베팅하고 카드를 세고 있으니, 그 행위 자체가 너무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재미있던 블랙잭이 지루해진 순간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여러분이 예상했던 그대로 입니다. 고삐풀린 말처럼 매주 강원랜드 바카라 테이블에서 제가 가진 모든것을 쏟아 부었습니다. 혹여나 다른 카페 회원분들을 마주치면 민망할까봐 당시에 회원분들이 잘 없던 영안실이라 불리던 쪽에 가서 게임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가진돈을 모두 잃고 대출도 모잘라 친구들에게, 그리고 창피하게도 회사에서도 돈을 빌려 게임을 했습니다. 그렇게 3개월남짓... 더이상 수습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고, 그떄의 빚이 1억남짓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모든것을 다 이야기 했습니다. 아버지는 여러말 하지말고 빚이 얼마냐고 물어보셨고, 다시는 하지 말란 말씀과 함께 1억의 돈을 제게 주셨습니다. 돈을 제가 빚진곳에 직접 주신게 아닌 저에게 주시고 제가 갚게 하신건 아직도 저를 믿고 계셨고, 제가 주변사람들에게 창피해지는걸 원치 않으셨던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이 배려가 지금도 제 마음 한켠에 남아 항상 가슴이 아픕니다.


그렇게 빚을 정리하고, 저는 회사를 퇴사했습니다. 그리고 회사에서 쌓았던 인맥을 믿고 작은 제 사업체를 만들었습니다. 사업은 순탄했습니다. 여러 주변분들의 도움도 있었고, 여러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서 금새 어느정도의 궤도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떄는 돈을 참 쉽게 썼던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매일밤 클럽을 다니며, 당시에 다니던 클럽이 지금은 없어진 옥타곤, 엘루이 같은 클럽들이었습니다. 매일 밤 샴페인을 마시고 어린 대학생 여자애들과 파티하고 노는 그런 삶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에게 다시 도박이 찾아왔습니다. 핸드폰에 하루가 멀다하고 오는 온라인카지노 홍보문자들... 매일이 즐겁고 행복하던 저는 그냥 한번 뭔지나 볼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행동 한번이 제 인생을 얼마나 뒤로 가게 할지는… 


 저는 그렇게 온라인 바카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도박중독이 무서운것은 빠지는 순간 다른 어떤것도 시시해진다는 것입니다. 클럽에서 노는것도, 예쁜 여자를 만나느것도 당시의 저에겐 아무 재미를 주지 못했습니다.


하루종일 온라인 바카라에 빠져 지내길 1년... 저는 가지고 있는 모든것을 잃었고, 거래처에 줘야 할 돈 5억, 그리고 수많은 빚이 남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에게도 노름쟁이로 소문이 나서 아무도 제 전화를 받지 않았고,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바닥을 뚫고 지하에 가있던 저를 품어주고 용기를 줬던 그 사람을 만나면서 저는 도박중독에서 조금씩 벗어나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래처에 줘야 할 돈 5억을 해결하지 못한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거래처에서 저를 사기로 고소했고, 집행유예를 예상했지만 현실은 징역 1년 6개월 법정구속이었습니다. 더 슬픈건 그때 저의 아버지는 투병중이셨습니다. 암이 발병하셨는데, 이미 많이 진행이 된 상황이라 수술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셨습니다. 그 와중에도 변호사를 구해주시고 거래처 사장과의 합의를 도와주셔서 저는 2심에서 집행유예로 나올수 있었습니다. 6개월 남짓한 구치소 생활이었지만 많은 것을 느꼈고,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고 성실히 살아서 아버지께 드린 상처를 잘 사는 모습으로 갚아드려야 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부모님은 우리를 기다려 주시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출소한지 3개월만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저에게 넌 잘 살수 있을거라고 말씀하시던 아버지 얼굴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나서 어머니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때 너 먹고 살라고 카페자리를 하나 사 놓으셨어. 니가 감옥에서 나오면 취업도 힘들고, 인맥도 잃어서 다시 하던 사업하기 힘들테니 카페라도 하라고  속초에 작은 건물을 사두셨어. 제발 정신 차리고 살아. 이거마저 날리면 넌 진짜 나쁜놈이야"


그렇게 저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자식을 사랑하신 아버지 덕분에 카페 사장이 되었습니다. 일은 힘들었고, 코로나등 여러 고비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도박은 이제 하지 않습니다.


카지노는 물론, 토토, 아니 흔하디 흔한 로또한번 산적이 없습니다. 제가 도박을 끊었는지, 아니면 참고 있는건지는 저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돌아가신 아버지께 조금은 덜 부끄러운 아들이 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이렇게 살아온지 이제 7년... 제 아이가 생기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더욱 많이 드는 요즘입니다.


“아버지 저 잘 살고 있어요! 보고 싶고, 미안하고, 사랑해요!”

댓글목록4

aaa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잘 참고 게신거예요...

먼저가신 아버지가  지켜주실 겁니다...

아버지 실망시키지 마세요...잘 읽었습니다^^

쪼이는맛박하라.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정말 잘 참고 계신겁니다.
완전 끊었다면 여기 글을 남기진 않으셨을테니요.
근데 병원장이면 자기가 병 미리 예방가능 하지 않나요?

과거엔카운터님의 댓글의 댓글

호호호님의 댓글

profile_image
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좋은일만 있으실거에요

댓글쓰기

적용하기
우편번호 - 우측 주소검색 클릭하여 검색
주소검색
Note: 기본주소
Note: 상세주소
Note: 장소명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전체 82 건 - 1 페이지
번호
제목
글쓴이
게시판 전체검색
다크모드
마닐라 용팔이 마닐라 존반장 클락 구부장